“이봐, 콜.” 켈시가 엑셀을 밟는 순간 포드가 부르릉 울부짖는다. “포기할 거지?!”
잠을 번쩍 깨우는 속도로 차가 질주하기 시작한다. 운전석에 앉은 켈시 듀이의 옷차림은 시시각각 변한다. 대시보드 위에 널린 잡동사니가 굴러다니고 차가 덜컹거린다. 포기해. 그리고 우리 곁으로 돌아와! 얼빠진 속도로 달리는 차 안에서 들을 수 있는 최고로 낭만적인 협박이다. 콜튼이 웃어버린다. 그는 자기가 정말로 즐거운 건지 아니면 화가 난 건지도 구분할 수 없다. 통나무집의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고 주름진 손을 잡아당기는 천진난만한 불청객들. 그래. 그게 바로 사랑스러움의 요점이지. 하지만 콜튼은 그 녀석들을 좀 괴롭히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럼 설득해봐요.” 먹먹한 바람 소리와 엔진음에 목소리가 반쯤 먹힌다. “아니지, 설득해줘요.” 숨을 힘껏 들이키고 콜튼이 외친다. “날 좀, 정신차리게 만들어보라고요!”
켈시가 씩 웃는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쾅! 포드가 바리케이드를 들이받고, 다음 순간 그들은 퀀텀다이브의 구겨진 생활복 차림으로 에피메니스 스테이션 바닥을 구르고 있다. 바닥에 늘어져 허공을 휘적이는 콜튼의 팔을 켈시가 텁 붙잡는다. 뺨은 멍들어있고 한쪽 눈가는 찢어진 주제에 눈이 반지르르하게 빛난다. "콜. 나 이거 잃어버리기 싫어." 그 녀석은 순진하게 그런 말을 한다. 콜튼이 웃는다. 이번엔 분명한 비웃음이다. 켈시의 팔을 확 잡아당겨 넘어뜨린 콜튼이 곧바로 그 녀석의 몸 위에 올라타 소리친다. "그게 다예요?" 휘두른 주먹이 켈시의 뺨을 힘껏 갈기는 순간, 그는 켈시의 눈 앞에 ‘켈시’와 ‘콜튼’이 살아가는 시간선을 활짝 연다.
페넘브라에서 시간은 닫히지도 흐르지도 않는다. ‘켈시’가 뒤집기도 못하는 듀이 부부의 사랑스러운 갓난아기였던 순간과, 스물 한 살이 되어 막 ‘콜튼’이라는 재수없는 동거인을 처음 만난 순간이 동시에 존재한다. 오클라호마의 뜨거운 햇볕이 퀀텀다이브의 두 사람 위로 내리쬔다. 지금, 얼간이 같은 남자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모텔에서 막 나오는 중이다. 그들은 꽤 괜찮은 휴가를 즐긴 대가로 폭탄 같은 연장 요금이 찍힌 영수증을 같이 노려본다. 그러다 중고 포드를 타고 모텔을 빠져나간다. 정확히 23분 후, 그 둘은 차 안에서 대판 싸우고 있다. ‘씨발, 차 멈춰요. 내릴 거니까!’ ‘오냐, 함 내려보든가. 여기 고속도로거든!?’ 그 말싸움은 그대로 그들의 일곱 번째 결별이 된다.
콜튼은 그 얼간이들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 아니, 심지어 그건 그의 삶이기도 하다. 좁은 2인용 소파에 '켈시 듀이'와 함께 구겨져 앉았을 때 맞닿은 어깨가 얼마나 힘껏 눌렸는지를 '사흘'과 동시에 떠올리면 콜튼은 다시 11층에서 뛰어내릴 수도 있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이 무거워진 삶, 진짜로 내쉬었던 숨, 진짜로 했던 사랑, 진짜로 심장을 떨리게 했던 간절함, 그것들을 4만 개. “내가 진짜로 뭘, 얼마나 포기해야 되는지,” 말을 시작한 순간 콜튼은 멍청하게 눈가가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걸 느낀다. “난 누가 좀. 알아줬으면… 좋겠던데.” 퀀텀다이브의 신입사원으로 보낸 한 달? 너희들?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게 됐다고. 그게 씨발 내 탓은 아니잖아! 목끝까지 차오른 외침을 삼키는 건 어렵지 않다. 콜튼은 이제 울기 직전에도 웃을 수 있다.
그 아래 깔린 켈시가 콜록거린다. 정확히 삶 하나의 무게만큼 무거운 가능성이 켈시의 어깨를 달궈진 도로 위로 짓누른다. 29번가에서 차에 치여 죽은 그 남자 ‘켈시 듀이’가 켈시 듀이의 몸 안으로 파고든다. 그는 이 망령을 어떻게 떨쳐낼 수 있는지 모른다. 머리가 둘로 쪼개지는 것 같은 끔찍한 피로감. 생리적인 눈물이 흐른다. 그래도 켈시는 눈을 굴려 콜튼을 보고, “콜튼….” 한 번 콜록이고 다시 이름을 부른다. 콜튼 데이빗. 그리고 메마르고 갈라진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알게.” 간절한 사람을 앞에 두면 그렇게 약속해버리는 게 켈시 듀이의 나쁜 버릇이다. 그리고, 그래서. 켈시 듀이는 정말로 알게 된다. 오클라호마의 차량 정비소에서 밤낮으로 일하며 전세계를 누비는 꿈을 꿨던, 바퀴가 네 개밖에 없는 중고 포드 차량을 간신히 마련한, 그래놓고도 콜튼 데이빗을 놓고선 떠날 수 없었던 어떤 멍청한 ‘켈시 듀이’에 대해서.
거기서부터 ‘내가 알게.’의 저주는 시작된다. ‘켈시 듀이’는 켈시 듀이의 몸 안으로 흘러들어오고, 미생물이라는 핵이 페넘브라를 폐허로 만드는 순간 벙커 속에서 살아남는다. 그렇게 그는 정답이 아닌 시간선의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