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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사히 퀀텀다이브로 돌아오게 된 후로도 저주는 계속된다. 켈시가 아침으로 양상추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으려던 차에 '켈시 듀이'가 질리지도 않고 피넛젤리 토스트를 생각한다. 토스트를 만들어 갖다 바쳐도 왜 스테이션에 놓여있는 피넛버터로는 옛날 같은 맛이 나지 않는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기껏 콜튼 데이빗을 탈의실 락커에 처넣는 데까지 성공해도 주먹을 휘두르지 못하고, 그냥, 누군가 한 번만 머리에 손을 얹어줬으면 싶다. 손발은 따로 놀고 모든 게 엉망이다. 그래, 예를 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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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테이션의 수영장 탈의실. 사내 녀석들이 거기 숨어 키스하고 있을 거라고 상상해본 적 있는가? 일자형 락커 안쪽에 주저앉은 콜튼의 멱살을 켈시 듀이가 잡아 끌어당긴다. 입술이 닿는다. 아까까지 켈시 듀이가 훌쩍이고 있던 음료수의 인공적인 단 맛이 난다. 입맞춤이 끝나기 직전 켈시는 숨을 가볍게 밀어넣고, 키스가 끝난 순간 혀로 자기 입술을 한 번 핥는다. 한 방 먹인 후처럼 켈시가 시원스럽게 웃는다. “자, 방금 건 내 안에 있는 녀석이 그 자식한테 전해달랜다. 너도 그냥 입술 달린 전달자일 뿐이지. 하하!”

  그 한 방은 이번에도 제대로 통한다. 스테이션 바닥을 뒹굴다 켈시 듀이의 주먹에 귀와 뺨 사이를 강타당했을 때처럼. 한 순간 콜튼은 모든 현실이 썰물처럼 자신으로부터 빠져나가는 걸 느낀다. 이제 그도 남자가 예고없이 한 키스 한 번에 넋을 놓을 만큼 어리진 않다. 하지만 방금 건 ‘켈시’가 키스할 때의 버릇이었다. 강렬한 그리움이 심장을 뭉개버리는 어떤 결정적 순간. 그런 순간이면 콜튼은 자신이 누구인지 완전히 잃어버린다. 끔찍하게 많은 '콜튼 데이빗'의 삶이 그를 4만 7천 갈래로 찢어놓는다. 차라리 지금 당장 신의 주먹이 그의 정수리를 내리쳐 삶이 즉각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 콜튼은 무참히 조각난 채 ‘콜튼’에게 자리를 빼앗긴다. 스물 다섯 살에 자살한, 막 죽은 남자친구의 키스에 끌려나온 클로짓 게이 말이다. 락커의 문틀을 잡고 있던 켈시가 천천히 몸을 물린다. 탈의실의 환한 조명이 그의 얼굴에 그림자를 만든다. “안정화할 땐,” 그건 ‘켈시’를 빼놓은 채 진행되는 귓속말이다. “몰래 해. 알려주지 말고.”

  4만 7천 가지 가능성? 사랑스러웠던 그의 연인들? 글쎄. 사라진 가능성은 아무도 증명할 수 없다. 페넘브라에서 돌아온 콜튼은 망상과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정신 이상자일 뿐이다. 탕! 현실 안정화가 탄환처럼 기억을 깨끗이 날려준다면 그는 마침내 편해질 수 있을 것이다─그게 바로 퀀텀 다이브가 사원들을 위해 준비한 '배려'다─. 하지만 ‘켈시’가 관 뚜껑을 열고 나와 다시 숨을 쉬는 지금, ‘콜튼’은 콜튼이 지쳤든 뭐든 알 바 아니다. 락커 안쪽에 등을 기댄 그 녀석은 뜨겁고 얕아진 숨을 한 번 들이킨다. 그리고 주먹 옆면으로 락커 벽을 짚어 몸을 일으킨다. “그러니까… 이런 뜻이죠? 연락 끊고 잠수해도 봐주겠다?” ‘콜튼’이 비웃음을 흘린다. 지금 그가 화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켈시 듀이가 멍청하게 함선을 탈취하려다 실패해서. 하마터면 그 몸 안의 ‘켈시 듀이’를 두 번 죽일 뻔해서. 모든 상황을 알면서도 아직 꿈을 포기하지 않아서. 하지만 방금 꺼낸 말이야말로 결정타다. 켈시 듀이는 젊은 커플 앞에서 절대 꺼내선 안 될 말을 했고, 이젠 이렇게 반격당할 차례다. 방금 우리 보고 헤어지라고 했냐?

  “그럴 순 없죠. 씨발, 잘 봐요,” ‘콜튼’이 켈시 듀이의 멱살을 잡아당긴다. 그리고 그대로 입을 맞춰 그 녀석 몸 안의 ‘켈시’한테 키스를 돌려준다. 누가 말리겠는가? 막 사랑을 손에 쥔 젊은이들은 사랑에 관한 모든 걸 다 안다는 것처럼, 아무도, 심지어 세계조차 그들을 갈라놓을 수 없다는 듯이 군다. 고집스럽게 입술을 짓누른 키스가 끝나는 순간 쿵, 두 이마가 부딪친다. “난 그 자식이 좋고,” 솔직히 털어놓을 바에야 차라리 죽고 싶었던 말을 있는 힘껏 외칠 때 ‘콜튼’은 사흘을 생각한다. 그 녀석은 살아있고 언젠가 또 다시 죽는다. “우린 존나 잘 어울리는 커플이니까!” 남자 둘이 한 집에 산다는 건 이런 일이다. 첫 문장부터 쌓아올린 거짓말이 마침내 뒤집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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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의실 조명은 쨍하고 문 하나로 이어진 수영장에서 물 냄새가 흘러 들어온다. 몇 초가 흐른다. 퀀텀다이브의 켈시 듀이와 콜튼 데이빗. 그들은 만난지 아직 두 달이 안 됐고 서로의 얼굴에 주먹질이나 두어 번 해본 신입사원 동기다. 안정화를 거부한 대가로 각자의 ‘가능성’에 시달리다가 방금 키스를 두 번이나 한 참이고. 그래, 좋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4만 7천의 제곱 번만큼은 벌어질 거다. 이제 회사는 콜튼의 전-아내, 여자친구, 남자친구들의 집합소나 다름 없으니까. '19633번째 시간선의 ‘켈시 듀이’와 ‘콜튼 데이빗’이었습니다. 박수 한 번 보내주시죠.' 이럴 때 멍청한 나레이션이라도 흘러준다면 삶이 좀 쉬워졌을지도 모른다.

  젠장. 현실도피를 그만두고 콜튼은 한 번 숨을 들이쉰다. 켈시의 멱살을 부드럽게 놔주고 어깨를 얕게 으쓱인다. “내 생각엔… 음. 방금 것도 내 탓은 아니에요.” 당연하지만 100% 진심이다. 그래도 인생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 빠른 시일 내로 콜튼은 퇴사나 자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방금 막 세 번째 선택지가 사라진 참이니까. 콜튼이 켈시를 향해 웃어보인다. “뭐. 중요한 건 이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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