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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데이빗은 아무 때나 자식을 때리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명확한 이유가 있을 때만 아들의 뺨에 손을 댔다. 콜튼이 여자친구의 머리채를 잡았다가 경찰에 신고당할 뻔 했을 때. 교실에 있던 꽃병을 깨고 깨진 유리로 교사를 협박했을 때. 동급생을 패서 코뼈를 부러뜨렸을 때. 아직 머리가 덜 자란 그의 아들은 늘 화가 나 있었고 그 화를 뉴 커먼웰스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데 쏟아붓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로버트는 아들을 고쳐놔야 했다. 리뉴얼 카운슬이 어린 손목에서 ID칩을 회수해버리기 전에 말이다. 문이 열리고 아들이 귀가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숨을 가다듬는 건 오히려 로버트 쪽이다. 

  로버트는 재미없고 진지한 남자다. 결코 달변가가 아니었다. 아들의 나이가 열넷을 넘은 후로는 미소를 지어본 기억도 희미하다. 6평짜리 단칸방의 숨막히는 정적 속에서, 아들과 단 둘이 저녁 식사를 하면서 그는 생각한다. 아내가 살아있었다면 달랐을까? 그녀라면 멍든 아들의 뺨을 어루만지며 그 위에 키스해줬을까? 한 순간도 가족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마법을 불어넣어 줬을까? 스물 둘에서 스물 셋으로 넘어가던 날 새벽, 콜튼은 그의 남자다움을 친구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면식도 없는 중국인 청소부의 멱살을 잡은 참이었다. 마침내 선택의 시간이다. 하나뿐인 아들이 차폐막 바깥으로 내몰리기 전에, 로버트 데이빗은 뉴월드 롯터리 프로그램에 콜튼 데이빗의 이름을 집어넣는다.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커뮤니티 센터 밖으로 새어나온다. 걸즈 나잇. 보이즈 나잇. 아니면 영화의 밤. 잠 못 든 새벽에 복도를 헤매는 콜튼은 그 소리를 듣고도 문을 열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끼고 싶지만 수줍음을 타는 게 아니다. 훨씬 단순한 문제였다. 만약 여기에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와 덜컹거리는 낡은 차가 있었다면, 그래서 누군가 ‘이봐 데이빗, 드라이브라도 할래?’ 그렇게 물었다면 콜튼은 바로 대답했을 것이다. ‘좋죠. 멍청한 속도로 달릴 것만 아니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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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그렇기 때문에 켈시가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말한 순간 콜튼은 씩 웃어버린다. 그건 오케이 사인이었고 ‘이봐 데이빗, 드라이브라도 할래?’에 가장 가까운 말이다. 바로 다음 순간 켈시가 그를 벽으로 밀친다. 벽을 등지자 콜튼의 머리에 경고등이 켜진다. 멱살을 꽉 잡혀 목이 졸린 상태에서 주먹이 날아온다. 뻑, 하는 소리가 날만큼 제대로 된 한 방. 두 방. 세 번째에서 콜튼은 잘못된 타이밍에 고개를 돌리고, 켈시의 주먹이 뺨을 때리고 콧등까지 강타한다. 뇌를 찌르는 아찔한 통증과 함께 콧속이 더워진다. 지체없이 코피가 흐르고 입술을 덮더니 턱을 타고 뚝뚝 떨어진다. 입안에 찝찔한 맛이 퍼지자 익숙한 비웃음보다 좀 더 시원하게 콜튼이 웃는다. “이렇게 나와야… 죠!” 곧바로 콜튼이 단단한 팔꿈치로 켈시의 배를 후려친다. 우습게도 레프로부터 배운 기술의 응용이다. 숨을 크게 들이킨 켈시가 배를 움켜쥔 채 비틀거리고, 몇 번인가 헛구역질이 이어진다. “하, 이 새, 끼가….” 하지만 콜튼은 알 수 있다. 켈시 듀이도 웃고 있다는 걸. 자세를 고친 켈시가 콜튼의 어깨를 콱 붙잡는다. 그들이 치고 받고 싸우다가 사이좋게 메디컬 센터에 신세지게 되는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진이 빠질 때까지 주먹을 휘두르고, 발로 차고, 밟고, 곧 누가 누구를 얼마나 팼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아버지들은 아들에게 주먹과 남자다움을 물려준다. 하지만 그걸 꼭 로버트의 가르침으로만 오해할 필요는 없다. 보라. 지금 콜튼이 얼마나 즐거워 보이는지. 맞고 자랐다고 표현할 만큼 콜튼은 자주 맞지도 않았고, ‘가정폭력 피해자’ 같은 현대적인 진단은 더더욱 부적절하다. 오히려 로버트가 남긴 멍은 콜튼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유일하게 마음에 들어하는 부분이다. 그건 최소한 남자다운 행동이었다. 어깨를 부드럽게 쥐고 내려다보면서 어린 자식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줄줄이 늘어놓는 것보다 말이다. 콜튼은 믿는다. 아버지가 주먹을 휘둘렀을 때, 그들은 남자였고 동등한 위치에 있었다고. ….

 

  두 사람이 뒤엉킨다. 퍽, 되는대로 내지른 힘빠진 주먹이 오랜만에 제대로 들어간다. 통쾌한 숨을 한 번 들이킨 콜튼이 지껄인다. “이봐요, 듀이. 알죠? 당신은 꽤, 괜찮은… 녀석이에요.” 지금도 켈시의 멱살을 꽉 붙잡은 콜튼은 자기가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 반밖에 이해하고 있지 않다. 켈시가 뭐라고 대꾸하기 전에 한 번 더 주먹을 갈긴다. 바로 이 타이밍이다. 콜튼이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솔직해질 수 있는 순간 말이다. 아드레날린. 수치심을 다루는 데 서툰 남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로버트 데이빗에게도 언젠가 그랬듯이. 소리지르고 반항하는 아들의 주먹에 맞아 팔에 멍이 들고, 곧 뺨이 부어오를 아들의 얼굴을 본 후에, 둘 모두 숨이 가빠 제정신이 아니게 된 후에야 그는 말할 수 있었다.

  “하하, 당신이 여기 있어서, 다행이라고요.”
  ‘난 널 사랑한다. 콜튼.’

  “안 그랬으면 회사 다니기가 네 배, 다섯 배는 더… 좆같았겠죠.”
  ‘네가 계속 안전한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어.’ 

  “하,” 켈시가 기침처럼 크게 웃는다. “그거 참 열렬한 고백이네.” 뻐근한 어깨를 무시하고 그가 팔을 들어올린다. “너 남자 싫어하는 척은 이제 관뒀냐?” 다음 순간 켈시가 휘두른 주먹이 콜튼의 귀와 뺨 사이를 강타한다.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사내 둘이 붙었을 때, 가장 큰 문제점은 서로의 주먹이 어떤 작용을 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균형을 잡는 데 실패한 콜튼이 그대로 꼴사납게 넘어진다. 다시 켈시의 옷깃을 쥐어보려 하지만 흔들리는 팔은 허공을 휘젓고, 누군가 무겁게 내리누르는 것처럼 몸이 일으켜지지 않는다. 흥분한 뇌와 항복을 선언한 몸. 그 사이에서 콜튼은 짧은 순간 켈시 듀이의 기억에서 훔쳐본 화성을, 그의 아버지가 살았다는 오클라호마를 떠올린다. …. 

 

 

 

 

 

 

  휘파람 소리. 그리고 66번 국도. 도로는 끝없이 앞으로 뻗어 있다. 화성 출신이 모는 경트럭엔 쓸데없는 물건이 많다. 관절 하나하나 힘없이 달그락거리는 해골 키체인, 머리를 흔들어대는 인형들, 반질거리는 것 외엔 뭐가 특별한지 모르겠는 돌멩이, 뭐 그런 것들 말이다. 차창 앞에 고정된 온갖 잡동사니로부터 콜튼이 질린 듯 눈을 뗀다. 기껏 헤어 왁스로 고정시킨 머리를 바람이 죄다 흐트러뜨린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은 켈시 듀이는 열린 창문에 팔을 걸치고 휘파람을 분다. 입에서 나오는 곡은 냇 킹 콜일 때도 비틀즈일 때도 있다. 그 휘파람 소리는 콜튼의 귀에 어떨 땐 듣기 좋고 어떨 땐 거슬린다. 선곡에 불만이 있거나 슬슬 싫증이 나면 그는 라디오를 틀어버리고 볼륨을 높인다. 그러다 어떨 땐 눈치도 없이 고상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켈시가 코웃음을 친다. ‘왜. 그거 들을래?’ 결국 콜튼은 운전석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 다시 라디오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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