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페넘브라에 도착한 콜튼은 제일 먼저 66번 국도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의 상상력은 못미더운 수준이고, 사진으로만 몇 번 볼 수 있었던 미국의 상징적인 도로는 조잡하게 군데군데가 끊겨 있다. 별 수 없이 콜튼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 차를 한 대 만든다. 세계는 허허벌판이고, 어설픈 신들이 어떤 손장난을 하든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다음에 콜튼은 벤을 찾는다. 노인이었던 콜튼을 돌봐주던 흑인 남자. 경계지대의 낡아빠진 모텔에서 그 남자를 찾아내 차에 태운다. 66번 국도를 달려 영화표를 끊는다. 벤은 콜튼과 완전히 다르고, 하지만 콜튼을 즐겁게 만들 수 있을 만큼 괜찮은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데이트가 끝났을 때, 콜튼은 '벤'의 모든 가능성을 뒤지기 시작한다. 벤이 그의 남자친구가 될 가능성은 생각보다 낮다. 그래도 어떤 시간선에서 콜튼은 나이가 든 자신과 벤이 웃고 있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이봐요, 벤. 아무거나 좋으니 솔직한 말을 해봐요.」
「아무거나?」
「아무거나. 고약할수록 좋고.」
의료동의 모두가 돌려쓰는 접이식 휠체어. 오늘 그 휠체어는 콜튼이 차지했고, 벤은 그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올해로 콜튼은 58세다. 그들이 만난지 5년이 흘렀다. 겨우 구한 마스크를 끼고 방사능이 남긴 오염와 흙먼지로 얼룩진 밖을 산책하는 것, 그게 커밍아웃을 고르지 않은 장애인과 간호사 사이에 허락된 유일한 데이트다. 벤은 '고약한 말'을 떠올리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음… 이 말 정말 안 하려고 했는데. 사실 당신이 쓰는 헤어젤 냄새가 좀, 힘들어요.」사실 벤의 불평이 자신의 머리를 지적할 줄은 콜튼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자기가 쓰는 헤어 왁스를 꽤 마음에 들어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벤이 변명을-최대한 변명처럼 들리지 않게끔 진실함을 섞어서-덧붙인다.「아침마다 머리를 넘기는 게 당신한텐 중요한 의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콜튼, 힘들다고는 해도 참을만 해요.」「젠장. 나도 다 알아요, 무슨 말인지.」그건 '심각해지지 말라고요.'라는 뜻이다. 휠체어 바퀴에 깔린 돌멩이가 튄다. 드륵거리는 소리와 희미한 바람은 정적 위로 나름의 낭만을 덧칠해준다. 벤의 말이 콜튼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이지만, 휠체어 손잡이를 붙잡은 손바닥이야말로 땀으로 축축할 거란 사실을 콜튼도 안다. 벤은 무르고 우유부단하고, 다정하고 솔직하다. 때로는 용감하기도 하고. 그래서 이런 말도 꺼내놓을 수 있다.
「그리고… 당신 다리가 마비돼서 다행이란 생각도 해봤어요. 아니었다면 우리가 만날 일이 없었을 거란 의미에서요. 음, 환자들한테 가끔 그런 생각을 하죠.」
벤의 목소리는 충분히 신중하다. 물론 그가 어떤 노력을 했든, 스물셋의 콜튼 데이빗이라면 ‘아하. 내가 장애인이라서 기쁘다고요?’ 그렇게 말하고 영영 자리를 박차고 떠나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든 콜튼은 그냥 한 번 숨을 들이킨다. 몸은 별 것 아닌 말 한 마디에도 상처받았다고 아우성치곤 한다. 지금 이걸 그냥 넘어가면 큰일이 날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콜튼은 그 모든 감각을 무시하고, 마침내 목소리가 떨리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면 이렇게 말한다.「나한테 완전히 푹 빠졌군.」그렇게 말할 때, 의외로 기분이 정말 괜찮다는 걸 그는 이미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벤이 웃는 걸 느낄 수 있다.「그게 핵심이죠.」데이트가 끝나기 전에 두 사람은 한 번 입을 맞추고, 그건 먼지 범벅이 된 보람이 있는 수확이다.
콜튼은 기억을 닫는다. 그건, 뭐랄까. 사실 그렇게 기분 좋진 않다. 속이 울렁거리고, 역겨운 걸 본 것 같다. 하지만 어쩐지 그 충격을 한 번만 다시 들여다보고 싶다고도 느낀다. 바로 그게 콜튼이 4만 7천 개가 넘는 시간선을 뒤진 이유다. '개인적인 사랑'을 낱낱이 찾아낸 이유 말이다. 어디선가 콜튼은 조앤 조 시디니아, 아니 조앤 데이빗과 살 2층짜리 집에 흰 울타리를 두른다. 켈시 듀이와 아무 모텔에 들어가 얼간이 같은 섹스를 한 적도 있다. 술에 절었다가 눈을 떠보니 아드리안 터너의 등에 업혀있기도 하고. 삼십 년 넘게 옆집에 살았던 토요 마사미츠의 동그란 이마에 장난처럼 입을 맞춰본다. 뭐, 시마와 키스 한 번 해보려면 남자로 다시 태어나야 할 줄 알고 절망할 때도 있다. 그 모든 순간에 콜튼은 살아있다. 심지어 살만하다고 느낀다.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기도 한다. 마침내 찾아낸 해답은 역시 좀 역겨울 정도로 뻔하다. 사랑. 그래, ‘그’ 사랑 말이다. 치밀어오르는 화와 짜증을 조금만 눌러 참고, 눈 앞의 사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하고 싶은 말에 솔직해지면 많은 일이 부드럽게 굴러가기 시작할 거라는 가르침. 수만 번의 반복 끝에 마침내 콜튼 데이빗도 그 가르침을 자신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부드럽게 미소짓는 법을, 침묵과 인내심으로 마법을 일으키는 법을 안다. 그 대가로 콜튼은 나이가 들었다. 손에 확고한 해답을 쥔 채 황혼을 바라본다. 떠날 시간이 다가온다. 그런 그에게 페넘브라가 마지막 가르침을 준다. 바로 세계는 개인이 찾아낸 해답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가르침이다.
콜튼은 비틀거리며 걷는다. 축하의 현장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간다. 얼간이 같은 66번 국도를 걸어 일층짜리 통나무집의 문을 연다. 솜이 푹 꺼진 소파에 앉아 TV를 켠다. 언제나 맨 처음 비치는 건 풋볼 경기다. 공을 쥔 선수들이 어깨를 부딪치고, 이마가 깨지고, 피를 흘린다. 콜튼은 깨닫는다. 모든 것이 고요하다. 어떤 가능성도 들여다볼 수 없다. 어디에도, 아무것도 없다. 마치 이사를 위해 짐을 다 포장해버리고 텅 빈 집처럼. 콜튼은 리모콘을 집어들어 채널을 바꾼다. 삑. ‘그래, 좋은 날들이었지. 많은 걸 배웠어.’ 삑. ‘아, 그들을 정말 사랑했는데.’ 삑. ‘젠장, 기분이 너무 좆같아. 술이 필요해.’ 드라마처럼 잘 갈무리된 대사는 떠오르지 않는다. 콜튼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머릿속이 새하얗거나, 아니면 새빨갛다는 걸 느낄 뿐이다. 멍하니 티비를 쳐다보던 콜튼은 오른손 안이 무겁다는 걸 간신히 알아차린다. 손에 쥔 건 리모콘이 아닌 22구경 권총이다.
핵교환이, 아니. 핵전쟁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의 기분이 이랬을까? 작은 미생물들이 벌인 일은 지구에서 핵이 저질러놓은 짓과 비슷하다. 2003년 6월. 첫 번째 핵교환이 발생하고 러시아 국토의 반이 전소했을 때. 그때 멀쩡히 눈을 뜨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문드러져 드러난 흰 살 안쪽의 빨간 면을, 모든 종류의 내장, 뼈와 지방, 죽어가는 사람, 죽게 될 사람, 죽은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야했을 것이다.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흰 울타리가. 로버 차량이. 심해 속의 3평짜리 살림이. 가능성 안에만 존재했던, 콜튼 데이빗을 사랑하는, 인내심 있게 미소 지을 줄 알았던 흑인 남자가 사라진다. 뼛가루 한 줌도 남지 않은 폐허다. 전부 망상이었나? 무한한 시간을 버텨내기 위해 콜튼이 발명해낸, 사랑이 필요한 어린애가 꾸며낸 세계였을 뿐인가?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콜튼의 상상력을 뛰어넘어 움직이고 있었다. 살아 있었다. 단지 핵 앞에선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던 거다. 살아있는 몸을 때려부수고 짓뭉개 그 내용물이 뭘로 이뤄져있었는지 낱낱이 보여주는 힘. 사랑하는 사람들의 뼈와 살을 태운 불은 콜튼의 등 뒤까지 바짝 쫓아온다. 돌아간다는 건 원래 그런 일이라는 듯이. 새로운 가르침은 이렇게도 들린다. ‘네가 원래 누구였는지 기억해내. 네가 제일 잘하던 일이 뭔지.’
그는 콜튼 데이빗이다. 숨을 쉴 때마다 분노로 폐가 떨렸던, 하지만 무엇에 화가 나는지도 몰랐던 스물 세 살의 어리석은 남자. 늙어가던 노인은 삶의 끝에서 다시 분노를 되찾는다. 그는 화가 났고, 그 화를,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다.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안전장치도 걸려있지 않은 권총이 손에 있을 땐 문제가 놀라울 만큼 쉬워진다는 점이다. 새빨간 숨을 들이킨 콜튼이 마침 클로즈업된 TV 속 풋볼선수를 쏴버린다. 쨍, 하는 소리를 넘어 펑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난다. 검은 연기가 터져오르고 화염이 번진다. 그 순간 하나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거대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으레 하는 생각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좆같은 가르침을 나눠주겠다고. 콜튼은 뉴 커먼웰스 엔클레이브로 돌아가야 한다. 미국. 총기난사범들의 나라. 그 위대한 조국으로. 세계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모르는, 과거의 그처럼 재난을 잊은 사람들의 품으로. 그리고 정확히 다음과 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4시간짜리 따스한 햇빛. 자원과 노동력을 폭력적으로 갈아 만든 깨끗한 공기. 후드를 쓰고 공원을 걸어가던 콜튼은, 옆을 지나가던 남자아이의 팔을 갑자기 붙잡는다. 그 애는 기껏해야 다섯 살쯤 되어보인다. 젊은 엄마가 비명소리를 낼 타이밍을 놓치고 말을 더듬는 사이, 콜튼은 남자애를 확 끌어안고 덜 자란 관자놀이에 권총을 들이민다. 그제야 몇 군데서 비명이 울린다. 겁먹은 어린 아이가 콜튼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린다. 누군가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고, 어떤 사람들은 마치 그렇게 끔찍한 일은 일어날 리 없다고 믿는 것처럼 겁먹은 채 굳어있다. 하지만 믿음? 그런 건 상관없다. 세계와는 정말로 아무런 상관도 없다. 존나 상관없다고. 씨발, 듣고 있어? 듣고 있냐고 이 개새끼들아! 콜튼이 망설임없이 어린애의 머리를 쏴버린다. 작은 몸이 순식간에 덜렁거리는 짐이 된다. 피. 비명. 실신과 경악. 사람들이 도망친다. 콜튼은 가장 가까이 있던 여자의 뒤통수를 쏘고, 발이 느려 뒤뚱거리는 노인을 쏘고, 그 옆에서 막 상실을 경험하고 아직 받아들이지 못해 무너져버린 노인의 아내, ‘제발, 제발, 안돼, 제발….’ 그렇게 중얼거리며 뜨거운 몸을 붙들고 흔드는 눈물 젖은 얼굴을 겨눈다. 사실 콜튼은 그 노부인과 똑같이 소리지르고 싶을 뿐일지도 모른다. ‘제발, 난 벤이 보고 싶어요. 조앤, 켈시, 마사, 터너. 씨발, 누구든, 아니 전부. 이럴 순 없어요. 돌려달라고요!’ 하지만 무슨 소용인가? 세계는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그냥 일어날 뿐이다. 콜튼은 그 깨달음을 가르쳐주기 위해 현실로 돌아왔다. 이게 바로 그가 이뤄낸 성장이다. 22구경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늙은 부부는 묵직하게 겹쳐진 두 구의 시체가 된다. 보라.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다. 폭력은 모든 걸 압도한다. 살아있는 몸이 가진 태생적 취약함. 그걸 잊은 사람들이 받게 되는 벌이다. 마침내 도착한 경찰들이 콜튼을 제압한다. 그들이 총기난사범을 몰아내고 안전을 되찾기 위해 다시 폭력을 휘둘러야 한다는 사실에 콜튼은 그래도 조금 웃을 수 있다. 그가 소리친다. ‘그래, 아무것도 아니지.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할 것이다. 사람들은 뉴 네트워크를 뒤져 콜튼 데이빗이 과거에 했던 말을 들춰낸다. 그가 얼마나 멍청하고 이유 없이도 약자들을 혐오할 수 있었는지 증명해낸다. 붙잡힌 남자가 존재한 적 없는 수만 가지 세계에 관한 망상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어떤 사람들은 인터넷창을 열어 정신병자들을 세상에서 격리해야 한다는 코멘트를 남긴다. 사람들은 믿는다. 세상엔 일어나선 안되는 일이 있다고. 조금 더 멍청한 사람들은 이렇게도 믿는다. 그러니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콜튼 데이빗은 그들에게 세계가 진짜로 어떤 곳인지 가르쳐줄 것이다. 그 남자는 힘이 없는 아이, 여자, 노인를 제일 먼저 쏜다. 쉬운 상대라는 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윤리라는 멍청한 믿음을 엿먹이기 위해서라면 그는 이제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
검은 연기를 내는 TV를 보다가 콜튼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역할을 다한 소파가 알아서 모습을 지운다. 테이블, 빈 맥주캔, 다 타들어가는 TV가 사라진다. 통나무집과 끊어진 66번 국도와 경트럭을 없앤다. 돌아가야할 곳이 있다. 그래, 돌아가야지. 왜냐하면 세계가 그것밖에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이제 콜튼은 원래대로의 콜튼 데이빗이라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가 전과 완전히 같진 않을 것이다. 사랑을 배웠으니까. 콜튼은 정말로 사랑했다. 순진한 미생물들이 먹어치워버린 모든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개인적인 사랑의 의미는 잃어버린 걸 누구도 보상해줄 수 없다는 뜻이다. "아. 진짜." 늙은 남자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비웃음뿐이다. 폐를 태우는 분노가 그 몸을 다시 젊게 되살린다. “진짜 좆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