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여덟 시간이 지난 후 콜튼은 벽에 포스터를 대고, 네 모서리 위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이고 있다. ‘Make America Great Again!’ 포스터 속, 주름진 얼굴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백인 남자가 콜튼을 향해 손가락질한다. 마치 바로 당신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 주인공이라는 듯이. 남은 건 마지막 확인이다. 콜튼은 화장실의 불을 켜고 안으로 들어간다.
‘너 그 단어 최근에 배웠지? 무슨 뜻인지 알고 얘기하는 거야?’
‘그야 옛날에 배우진 않았죠. 무슨 뜻인데요?’ 이쯤에서 콜튼은 비엘티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문다. 샌드위치에서 스며나온 랜치소스가 입가에 묻는다. 베르나가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냅킨을 건넨다. ‘너를 게이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작업.’
거울 속에선 오른쪽 눈이 사시인 동양인 여자가 콜튼을 노려보고 있다. 여자는 절망한 것처럼도, 화가 난 것처럼도, 겁에 질린 것처럼도 보인다. 콜튼은 자기 눈을 더듬어본다. 완전히 똑같은 타이밍에 유리 속 여자가 눈을 만진다. 이미 50번도 넘게 확인한 현상이다. 거울 속에서 콜튼은 백발의 노인이었다가, 흑인 여자아이가 되고, 성별을 짐작할 수 없는 라틴계 청년으로 바뀐다. 눈썹이 두텁고 눈꼬리가 내려가 묘하게 콜튼을 닮았지만 그뿐. 완전히 다른 삶의 궤적을 따라왔을 타인들이 마치 콜튼인 척 그곳에 서있다. 정확히 그 순간 개인실 밖에선 칼 에헤르시토 라포르테자가 담요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탐사 중 무서운 일을 겪으셨다면, 저희 현실 안정화부에서 도움을 받으실 수 있답니다.’
콜튼은 거울에서 눈을 떼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굳은 살이 군데군데 박혔지만 비교적 부드러운, 충분히 햇볕에 타지 않은 백인 남자의 손. 그대로 주먹을 꽉 쥔다. 여기에 '표준적 현실'이 있다. 조앤 조 시디니아의 말에 따르면 사람은 남들 눈에 보여지는 방식으로 정해진다고 한다. 콜튼의 물리적 신체는 이전과 똑같고, 타인의 눈에 그는 여전히 멀쩡한 백인 남자다. 그렇다면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몇 번 손을 쥐었다 편 콜튼이 심호흡을 한다. 문손잡이를 잡을 용기를 내는 데 한참의 시간이 더 걸린다. 끝날 기미가 없는 망설임을 거쳐 콜튼은 결국 후드를 뒤집어쓴다. 얼굴 위에 그림자가 지자 희미한 안심감이 든다. 이제야 그는 문손잡이를 돌릴 수 있다. 하나 더, 이제는 확실한 사실이 있다. 콜튼은 퀀텀 다이브를 증오한다. '현실 안정화'든 '재배치'든, 회사가 그를 그가 아닌 어떤 것으로도 바꾸게 두지 않을 것이다. 문이 열린다. 큐 사인이다. 콜튼은 연기를 시작한다. 이제부터 그는 증명해야 한다. 그가 여전히 남들이 아는 그대로의 "콜튼 데이빗"이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