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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야. 다음부턴 그런 소리 하지 마.” 

  “그런 소리?” 

  “어제 밤에 네가 지껄인 거.”

  “이거 말이에요?” 뭘 쥐고 흔드는 제스쳐를 보여주면 켈시가 짜증난 얼굴로 눈을 굴린다. “그래, 그거 새꺄.” 콜튼이 대충 어깨를 으쓱인다. 그럴듯하게 웃고 있지만 사실 콜튼이라고 기분이 그렇게 좋은 건 아니다. “농담 갖고 심각해지긴.” “아, 그래. 내가 진짜 게이면 어쩔 건데?” 

  그 말을 듣기 전까진 그랬다는 소리다. 켈시 듀이가 꺼낸 말은 그래, 난 게이야. 보다는 제발 입 좀 다물고 아침 먹으면 안 될까? 에 가깝다. 젠장, 하지만 콜튼은 멍청하게 벼락을 맞았다. 덜컥 내려앉은 심장은 거의 ‘사실 그 말이 듣고 싶었죠.’라고 실토한 거나 다름없다. 콜튼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켈시가 사납게 웃는다. “반 년은 이 집 못 나가는 거 알지? 잘 때 조심하라고.” 빈 접시를 들고 가며 그는 콜튼의 어깨에 손을 턱 얹는다. 그런 순간에도 콜튼이 느낀 건 기껏해야 손바닥의 뜨거운 체온 정도다. 등 뒤에서 설거지하는 소리가 들린다. 양아치 같은 차림새와 달리 켈시는 성실하고, 늘 식사가 끝나자마자 설거지를 한다. 콜튼은 퍽퍽한 토스트를 마저 한 입 먹고 우유를 한 모금 마신다.

  그 날도 콜튼은 친구들과 밤 늦게까지 다운타운을 돌아다니고 새벽에야 돌아온다. 파이프 사다리를 타고 침대 2층으로 올라가면서 이미 곯아떨어진 켈시를 내려다본다. 씨발, 당연하지만 콜튼이라고 켈시 듀이가 자기 침대에 올라와 난폭하게 굴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그냥 콜튼은 그 자식이 진짜로 게이인지, 샤워실에서 한참 나오지 않을 때 진짜로 한 발 빼고 있는 건지, 그럴 땐 도대체 뭘 생각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삼십 분 정도 뒤척이던 콜튼은 결국 짜증과 함께 다시 침대에서 일어나고, 거실에 나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낸다.

  처음엔 이렇지 않았다. 정말이다. 막 정비소에서 돌아온 그 녀석한테서 경유와 쇠, 그 날 아침 문지른 비누거품과 낮에 흘린 땀이 섞여서 나는 복잡한 냄새가 날 때.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태양에 뜨겁게 데워진 팔이 어깨에 얹힐 때. 그런 것들은 콜튼을 놀라게 만들고, 명치 부근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느낌을 남긴다. 금요일 밤이 끝나면 콜튼은 새벽 2시를 기다린다. 충분히 섹시한 여자들은 여전히 그의 것을 서게 만들 수 있다. 오늘 거실에는 켈시도 있다는 사실만이 신경 쓰인다. 콜튼은 제발 켈시 듀이가 거실에서 꺼져줬으면 하는 마음 반, TV에서 오늘 나올 여배우가 그 녀석 취향이었으면 하는 마음 반이다.

  “지난번에 한 말 거짓말이죠?”  

  “왜. 그렇다고 해줬으면 좋겠어?” 

  “그야, 여자 보고 섰잖아요.” 

  “안 섰다고, 씨. 근데 어쩌냐. 난 예쁘면 어느 쪽이든 상관 없어.” 

  “웃기시네. 방금 지어냈죠?” 

  “하. 진짠데? 어쨌든 게이는 아니지.” 켈시가 입을 비죽이며 웃는다. “그럼 넌 나한테 ‘약속한 거’ 해줘야 될 텐데. 마음의 준비는 해놨고?”

  아, 찾아온 기회를 흘려보내기에 콜튼은 너무 젊다. 상황은 멍청하고 남자들은 취해있다. TV에는 정상적인 남자라면 누구나 반응할만한 야한 영상이 흐르고 있고. 저지르고 난 후에도 충분히 변명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아마도. “‘준비’가 필요한 일도 아니죠. 또 해달라고 조르지나 말아요.” 그렇게 콜튼은 결국 일을 친다. 켈시 듀이 옆에 앉으면 생각보다 목 안쪽이 조여온다. 남자들이 사귀지도 않으면서 같이 자위를 하고, 서로의 좆을 만지거나 빨고, 마치 친구 사이에 그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듯 구는 이유가 꼭 그들의 왕성한 성욕 때문만은 아니다. 잊히기 십상인 사실이지만 그런 행동에조차 용기는 필요하다. 콜튼은 충동이 기분 탓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고, 동시에 그 말을 핑계로 충동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맥주 캔을 내려놓을 때 콜튼은 긴장해 있다. 그 사실을 켈시 듀이한테 들킬 바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5

  “여자친구랑 살기로 했어요. 친구가 집 같이 쓸 사람 찾던데, 연락처 필요해요?” 

  네 달 후, 침대 위에 가방을 활짝 열어놓고 옷가지를 정리하면서 콜튼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침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팔짱을 낀 채 켈시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서있고. 콜튼의 말을 들은 켈시는 마치 누군가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표정을 구기고 호흡을 짧게 멈춘다. “여자친구?” “사진 볼래요?” 핸드폰을 태연하게 만지작거리기 시작하는 콜튼을 켈시가 계속 쳐다본다. 당연히 그가 새 여자친구 사진 같은 걸 궁금해하는 게 아니라는 걸 콜튼도 안다. 닷새 전에도 그 녀석들은 잤다. 망하긴 커녕 지금까지 한 것 중에도 손에 꼽게 끝내주는, 젠장, 이 새끼는 무조건 날 사랑한다. 서로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인 섹스였다. 켈시는 한동안 조용하고, 그 사이 콜튼은 티셔츠 두 개를 더 접어넣을 수 있다. 

  “야.” 마침내 켈시가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의외로 조용하다. “…난 뭔데?” 아, 이 삐걱거리는 분위기. 지금껏 이런 공기를 만들 줄 아는 건 여자친구들뿐인 줄 알았지만 아무래도 생각을 바꿔야겠다. 콜튼은 핸드폰 화면 속 브이를 그리는 여자친구를 주머니 속으로 치워버린다. “그야,” 그는 찡그리고, 웃으려고 한다. 늘 그렇듯 그건 비웃음을 닮는다. “씨, 아무것도 아니죠.” 다음 순간 쿵, 파이프 침대의 기둥에 콜튼의 등이 부딪친다. 침대가 삐걱거리며 흔들린다. 멱살을 붙잡은 켈시는 화가 난, 아니, 상처받은 얼굴이다. “그럼 씨발… 말을 하든가! 처음부터, 그럴 거면, 이 새끼가…." 거리가 가까워 뜨거운 숨이 미간에 닿는다. 켈시가 주먹을 손이 떨릴 정도로 꽉 주먹을 쥐는 걸 보고 콜튼은 뺨에 날아올 한 방을 각오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바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다. 켈시는 한참이나 콜튼을 노려본다. 거의 영원히. 하지만 그 시간이 끝나자 그 녀석은 느리게 몸을 일으킨다. “됐어….” 그리고 켈시가 잡았던 멱살을 놔준다. 콜튼도 안다. 보통 이렇게 되면 뭔가 잘못됐다는 뜻이다. “됐다고, 씨발. 계속 붙잡아서 미안하게 됐다.” 몸을 돌린 켈시가 그대로 침실에서 나가려는 참이다. 어디까지 가버릴까? 거실? 집 밖으로? 오클라호마를 떠나 어딘가 멀리? 켈시 듀이가 언젠가 가볼 거라고 호언장담한 장소는 너무 많아서 다 기억할 수도 없다. 그 녀석이 '게이처럼' 징그럽게 굴지 않고 떠나는 건 분명히 콜튼이 바란대로인데, 하지만 젠장, 당연히 차는 게 콜튼이고 차이는 게 켈시여야 한다. 콜튼은 덜컥 겁이, 아니 화가 나서 외친다. “이게 내 탓이에요?” 그러자 켈시가 뒤를 돌아본다.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콜튼은 진짜로 화가 난 표정이다. “당신이 자꾸 남자친구처럼 구는 게 진짜 문제겠죠!” “하. 진짜 문제?” “그러니까, 씨발. 수업 끝났다고 마중을 왜 나오냐고!” 반박의 말이 목끝까지 올라온 것처럼 보였던 켈시가 할 말을 잃는다. 콜튼이 꺼낸 말이 너무 멍청하게 들려서인지 아니면 기억을 더듬기 위해서인지 알 길이 없다. 켈시가 컬리지에 찾아간 건 닷새보다 더 예전 일이다. 참고로 제때 연락을 못 본 건 콜튼이고, 켈시는 그냥 저녁 약속 시간이 코앞인데 연락이 없는 콜튼을 찾아갔을 뿐이다. 확실히 그때 콜튼은 수업을 같이 듣는 녀석들과 함께 있었다.

  “넌, 씨발, 뭐… 아니, 그건 미안했는데!” 멍청한 켈시 듀이는 그 와중에 사과를 끼워 넣는다. “그런 건 그냥 말하면 되잖아!”

  “말하면 뭐 달라져요!?”

  “내가 안 찾아갔겠지!”

  켈시가 울컥해서 외친다. 아, 그래.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콜튼이 느끼기에 이 이야기는 완전히 평행선이다. 그가 진짜로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뭐라고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다. 켈시 듀이와 섹스하려면 콜튼은 술을 많이, 점점 더 많이 마셔야 한다. 이제 더 이상 흔한 장난이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곳까지 와있었다. 벌어진 켈시의 셔츠 안쪽으로 손을 넣으면 부드러운 가슴 대신 땀이 밴 단단한 근육이 만져진다. 그런데도 실망 대신 오히려 기대한 걸 손에 넣은 듯한 느낌이 들었을 때. 그 녀석의 다리를 붙잡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밀착시킬 때, 아니면 반대로 안쪽을 쑤시는 열기에 땀이 흐르고 척추가 근질거릴 때,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들을 ‘fuck’이라는 짧은 단어로 압축시킬 때. ‘이거면 돼.’ 분명 콜튼도 잠깐은 그런 기분을 느낀다. 문제는 그 기분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새벽이 되면 콜튼은 깨질 것 같은 두통과 함께 술을 게워낸다. 가끔 거기 정액이 섞일 때도 있고 그러면 구토가 두 배는 길어진다. 그는 지금 다른 사람들 눈에 게이처럼 보일까? 지금도 그의 친구들은 ‘호모 새끼’라는 말에 무조건 웃음을 터뜨리는데. 젠장, 친구들 생각을 하다보니 콜튼은 공학 수업 과제를 빼먹었다는 사실을 함께 떠올린다. 모든 게 엉망이다. 삶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가까스로 눈을 붙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또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하고, 그는 도저히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고, 그렇게 수업을 빠진다. 학교에 가면 애나 오코너가 있다. 어깨까지 오는 금발머리가 제법 귀엽지만 몸매는 그냥 평범한 여자애. 그 애가 복도에서 굳이 콜튼의 옆자리를 골라 걸을 때. 콜튼은 친구들한테 보여줘야 했다. 그가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옷을 벗길 거라는 걸.

  “넌. …. 뭘 어쩌고 싶은 건데?” 켈시가 참을성을 발휘해 묻는다. 콜튼은 침묵한다. 하필 그때 꼭 타이밍을 맞춘 것처럼 전화가 울리기 시작한다. 발신자는 애나. 아, 진짜! 남자친구고 여자친구고 둘 다 좆같다고! 결국 콜튼은 둘 중 어느쪽에도 답하지 않고 책상 위에 방치돼있던 미지근한 맥주를 집어든다. 김이 다 빠진 맥주를 한 번에 들이키는 그를 켈시가 가만히 지켜본다. 빈 캔을 내려놓으며 콜튼이 짜증스레 대꾸한다. “몰라요.” “….” “나도 모른다고요.” 전화는 끈질기게 울린다. 확실한 건 하나다. 콜튼은 지금 애나 오코너보다는 켈시 듀이와 키스하고 싶다. 그는 여자친구의 전화를 무시하고 켈시의 입을 막아버리기로 한다. 

  

  6

  방황할 시간이 영원히 주어지는 건 아니다. 이번 학기 콜튼은 원래 들을 생각이 없었던 자동차 공학 이론 수업을 하나 신청했다. 물론 켈시 듀이 때문에. 바꿔 말하면 켈시 듀이와 관계가 망했을 때는 수업에 전혀 집중이 안 된다는 뜻이다. 콜튼은 여덟 번째로 결별한 그의 동거인으로부터 연락이 오는지 핸드폰을 신경쓰고 있다. 설거지, 술, 자동차. 닷새 전 말싸움은 세 가지 주제 중 하나였고, 이렇게 오래 끌 일이 전혀 아니었다. 이미 그들이 떨어진지 닷새가 지났다. 그러다 전화가 온다. 켈시라면 수업 시간에 전화하지 않았을 거고, 실제로도 모르는 번호다. 콜튼은 그냥 교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전화를 받기로 하고 교실을 나선다. “여보세요.” ‘데이빗 씨? …’

  여자는 자길 데이지라고 소개했다. 그녀의 성이 ‘듀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에 콜튼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 잘 이해할 수 없다. 데이지는 아들이 가끔 콜튼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말하는데, 그 목소리는 축축하게 젖어있고, 그건 꼭 재미없는 드라마나, 친구들이 벌인 질나쁜 장난 같다.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콜튼은 자기가 데이지의 말에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켈시 듀이의 장례식’? 콜튼은 뭐 그런 곳에 와있는데, 거긴 정말이지 모든 게 농담 같다. 드레스코드는 까만색에 장소는 교회고, 사람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켈시 듀이가 죽은 것처럼 굴기로 약속한 모양이다. 20대 초반의 여자애가─아마 켈시와 같은 정비소의 알바생이다─흐느끼자 옆에 있던 노부인이 그녀의 작은 등을 몇 번이고 쓸어준다. 아, 거기엔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차라리 콜튼이 직접 의자에서 일어나 외쳐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이봐요, 그 새끼는 게이라고요. 내가 그 증인이죠.’ 그러면 엄숙한 분위기는 찬 물을 맞고 바보 같은 연극도 끝날 것이다. 하지만 콜튼은 도저히 관, 거기 준비된 관 안을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석상처럼 무겁게 교회 의자에 앉은 채 그냥 입을 다물어버린다. 저 멀리 뒷자리에서 누군가 속삭인다. ‘더 큰 병원이었다면, 어쩌면….’ ‘제발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귀갓길, 콜튼은 버스를 타고 해가 져가는 차창 밖을 쳐다본다. 온 거리가 낯설게 보이지만 콜튼한테 풍경 같은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는 그냥 사흘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응급실로 실려간 켈시 듀이의 숨이 완전히 끊어질 때까지 사흘이 걸렸다고 한다. 사흘. 그 말은, 그 녀석이 아직 살아있었을 때, 아직은 위태롭게나마 심장이 뛰고 손바닥에 희미한 온기가 남아있을 때, 씨발, 멍청하게 굴지 말고 눈 좀 떠보라고요, 콜튼이 부른 순간 기적처럼 켈시 듀이의 눈꺼풀이 희미하게 경련하고, 오직 그 미세한 반응으로 그들이 서로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도 있었을지 모를,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이, 간절한 그 모든 시간이 한 방울도 남김없이 바닥에 쏟아져버릴 때까지, 아무도 콜튼을 병원으로 불러주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 일들이 클로짓 게이들이 겪게 되는 흔한 사건이라는 건 콜튼으로선 알 길이 없는 사실이다. 그 녀석은 사흘이나 살아있었고, 그 후로 그는 눈을 뜨고 있는 모든 순간에 켈시 듀이의 심장이 아직 뛰고 있었던 사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7

  정신의학과 진료실, 상담소, 자조 모임. 그런 곳에 찾아오는 사람의 8할은 여자들이다. 남자들은 한 번이라도 그런 곳에 스스로 발을 들였다는 수치심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콜튼은 한 시간 거리의 정신과에서 딱 한 번 2주치 약을 타온 후로 다시는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제 대학에서 알고 지낸 마음 넓은 친구─그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스트레이트'에서 멀어보이는 녀석이다─의 집에 얹혀산다. 병원에서 돌아온 남자들은 텅 빈 자리를 술이나 마리화나, 때로는 더 자기파괴적인 습관적으로 채운다. 마침 친구는 마리화나에 푹 빠져있고 콜튼은 삶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를 손에 넣는다. 출석은 완전히 망했지만 더 이상 미래 같은 걸 신경쓰지 않는다. 콜튼은 켈시 듀이와 사흘과 자살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때때로 핸드폰이 울리지만 무시한다. 대부분은 로버트 데이빗으로부터다.

 

  일주일 후 로버트는 결국 콜튼이 신세진 친구 집에 직접 찾아온다. 뉴욕부터 오클라호마까지 비행기로 5시간이다. 어떻게 애정이 아닐 수 있겠는가? 집주인이 머쓱하게 자리를 비워주고 나면, 두 명의 데이빗은 마리화나의 매캐한 냄새가 밴 거실에서 컬리지의 출석 상황, 성적, 콜튼이 어울리는 친구들에 대해 한바탕 말씨름을 한다. 

  “젠장, 콜튼. 네 그 호모 같은 친구들이,” 로버트가 그렇게 말한 순간이다. 콜튼은 욱 해서 소리친다. “호모, 게이, 씨발. 내가 그거라고요!” 그러자 어질러진 방 안에 정적이 흐른다. 아, 로버트, 그 불쌍한 남자는 야구 배트로 머리를 한 대 후려맞은 듯한 얼굴이다. 쉼없이 쌓아올린 커리어, 아내 없이 아들을 길러온 세월, 장학금을 받을 성적이 못되는 그 녀석의 학비를 꾸준히 대준 결과가 이거다. 하나뿐인 아들은 로버트가 모르는 컴컴한 굴로 들어선다. 콜튼은 그 남자를 밀치고 집을 나가버린다. 용돈은 끊길 것이고, 학비, 생활비, 뭐든 마찬가지다. 이제 그는 세상에 안전줄 없이 매달려있고 후련할 만큼 혼자다. 앞으로 평생 로버트 데이빗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일은 없다. 적어도 열흘동안 콜튼은 그렇게 믿는다.

  말싸움으로부터 열흘이 지난 목요일 이른 저녁. 합성 마리화나는 콜튼의 몸을 무겁게 누르는 동시에 머릿속을 하얗게 지운다. 콜튼은 자신이 언제 착신 버튼을 눌렀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핸드폰은 늘어진 손에 쥐여져 있고, 소파에 녹아붙듯 누운 콜튼은 멍한 머리로 로버트의 목소리를 듣는다.「콜튼.」로버트는 술을 마신 것 같다. 평소보다 어눌해진 발음과 열기가 담긴 목소리. 도피와 마주보기,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야 할 때의 감각을 콜튼도 잘 알고 있다.「네가 헤매고 있다는 걸 안다.」 … 「어릴 땐 나도 그랬지. 그런 적도 있었어.」수치심을 참기 위해 로버트는 그 통화를 조언 대신 독백으로 채운다. 상담사들은 그런 방식을 추천하지 않겠지만, 동시에 모든 말은 안쓰러울 만큼 진심이다. 그 남자가 전하고 싶은 핵심이자 최대한의 위로가 간신히 입에서 나온다.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어. 정말이다, 콜튼.」

  사실 로버트는 조금 더 털어놔야 했다. 알코올의 힘을 빌려 통화 버튼을 누르게 만든 자신의 감정을, ‘그러니까 제발, 난 네가 떠날까 두렵다.’ 바로 그 말을. 진실함만이 결정적인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준다. 하지만 로버트는 거기까지 말하지 않았다. 전화가 끊어진 순간 콜튼은 문득 이번에야말로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낀다. 그는 지금껏 몇 번이나 시도했고 또 실패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어쩐지, 정말로 쉽게 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통화가 끝나고 두 시간 후 로버트 데이빗은 경찰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맨션의 11층에서 뛰어내린 아들의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겉옷도 걸치지 않고 사무실을 뛰쳐나간다. 남자들은 정신의학과 진료실, 상담소, 자조 모임에서 모습을 감추고, 어느 날 말도 없이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컬리지의 교사들도, 같이 마리화나를 피우던 친구들도 콜튼 데이빗이 왜 갑자기 뛰어내렸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그 녀석은 마약에 취해 있었고 아버지한테 화나 있었다. 원래 멍청한 남자들은 별로 오래 살지 못하기도 한다. 아스팔트에 부딪친 몸이 박살나는 순간까지 그가 켈시 듀이와 사흘에 대해 생각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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